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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세상

(공포)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미스터리 후삭 터널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미스터리 공포 후삭 터널(Hoosac Tunnel)

BLOODY PIT




오늘은 미국의 유명한 심령 스팟 후삭터널에 관해서 포스트 하겠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부에 위치한 후삭터널은

총길이 13,7km의 기차가 다니는 터널 입니다.

1851년 공사를 시작해서 1875년 완공.

그 당시 미국에서 가장 긴 터널이며, 미국 근대화를 이루는 데 많은 공헌을 한 곳으로

미스터리 하고도 공포스러운 전설이 전해지는 미국의 유명 심령 스팟 이기도 합니다.



후삭 터널은 24년의 공사 기간 동안 공사와 관련된 사람들이

200명 넘게 사망한(공식적으론 193명)곳으로 그때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인한 사고가 있었다 치더라도, 그 외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가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두려움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이 그만 두거나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였다고 하며

이런 일들로 인해서 공사가 중단 되기도 하였습니다.



공사 초기에는 인부들이 곡괭이랑 삽으로 터널 공사를 하였고

산의 암석들을 거의 맨몸으로 뚫다 시피한 공사는 미국이 니트로글리세린을 도입 함으로써

1865년 미국 최초로 니트로를 사용한 폭파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제의 전설은 이제 부터 시작 입니다.


니트로를 이용한 폭파 작업에 고용된 3명의 기술자들은

빌리 내쉬(Billy Nash), 네드 브링크먼(Ned Brinkman), 링고 켈리(Ringo Kelley)이 3명으로

그 당시 최고의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폭파 작업을 하던 날 어떤 이유인지 자신들이 설치한 폭발물에 의해서

무너져 내린 암반에 깔려 죽고 맙니다.

(폭파 후 암반을 정리 하다가 2명의 시신만 발견됨, 기술 책임자 링고 켈리는 행불)



터널 노동자들에 의하면 3명은 폭파 작업을 하러 올 때 부터

사소한 의견 충돌로 싸움이 잦았다고 하며

경찰과 회사 사람들은 실종된 링고 켈리가 고의로 2명이 안전지대에 피신하기도

전에 폭파를 하고 도주 했다고 사건을 결론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건이 있은 1년 뒤인 1866년 도주 했다고 생각했던;링고 캘리가

방금 죽은 것처럼 깨끗한 시신으로 2명이 죽은 바로 그 자리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경찰은 철처하게 수사를 했지만 링고 켈리를 죽인 범인을 찾을 수 없던

이 사건은 영원한 미제로 남게 되고

그 뒤로 사람들 사이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링고 캘리에게 죽은 2명의 영혼이 복수 하기 위해 돌아 왔다...



그 사건으로 한동안 공사는 중단 되었고 있던 인부들도 다들 떠나고 맙니다.


1868년 다시 공사를 진행 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오게 되는데.

기술자 폴 트레버스(Paul Travers)는 남북전쟁 당시의

전쟁 영웅이자 기계 공학자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 건설 회사에서

고용한 사람 이었습니다.

트레버스가 들은 건설 회사의 설명은 "아무도 없는 터널 안에서 사람들이 웅성 거리는

소리가 나거나 고통에 찬 남자의 신음 소리가 난다"

그 소리 때문에 새로 온 인부들이 터널 안에서 작업 하기를 거부 하는 소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 일을 조사 하기 위해 당신을 고용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

1868년 9월 8일 저녁 9시 트레비스는 자신을 고용한 건설 회사 직원 던(Dunn)씨와 함께

터널로 향하게 됩니다.

가기 전 트레버스는 "분명 바람의 소리 일 것" 이라고 생각 했었다고 합니다.



손에 횃불을 들고 입구에서 부터 천천히 걸어서 3km 정도 들어 가니 바람 소리인지..

뭔가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희미하게 들려오던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트레버스는 그 소리가 바로 남자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등골이 오삭함을 느끼며

터널 안에는 자신들 밖에 없다는 걸 확신 하는 순간 이었습니다.

분명 바람 소리가 아닌 사람이 죽어 가면서 내는 고통의 소리..

남북 전쟁의 영웅 트레스가 전장에서 수많은 죽음과 마주 하면서 무수히 들어 왔던

소리가 바로 지금 그곳에서 들려오는 것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은 피의 구덩이(BLOODY PIT) 이라고 하는 후삭터널의 공기 구멍 입니다.


트레버스의 조사가 있고 한달 후 인 1866년 10월17일 후삭터널의 공사 도중 일어난 사고 중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사고가 터지고 맙니다.

터널의 중심부에서 터널 위로 공기 구멍을 내는 공사로 그때 당시의 기술로는

상당히 어려운 작업 이었습니다.

위에서 부터 땅을 파내려 가는 동안 암반에서 나오는 물을 펌프로 빼내면서 작업을 하였고,

어느날 작업 중 펌프가 터지는 바람에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13명의 사람들이 사망..

538피트(164m) 깊이의 구덩이에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오고, 희생자들의 시신도

물 위에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그날 사망한 인부들의 시신 중 몇구는 1년 후 떠오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인근 마을 사람들은 피의 구덩이가 있는 곳에서 곡괭이를 든 인부들의 유령을

여러 차례 목격 하게 되고 각종 신문이나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유령 목격담


1872년 6월 어느 날 밤 11시 30분 굴착 감독 제임스와 오웬스 박사가 터널을 조사 하기 위해

들어간 터널 안에서 갑자기 추워 짐을 느끼는 순간 남자가 흐느껴 우는 소리와 뿌연 사람 형체의

물체를 목격,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던 오웬스 박사는 그 뒤 유령을 분명 보았 노라고 신문에 기고


1874년 10월 지역 사냥꾼 프랭크 웹스터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서 지역민들이 수색대를 구성

근처의 강에서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발견된 웹스터는 "터널 안에서 유령을 목격

유령이 자신의 라이플을 뺏어 가서 라이플로 자신을 때렸다."


1875년 근처 주민 하란 물바니가 장작을 구해 마차를 타고 터널을 통과해 집으로 가던 중

행방불명 그날은 기차가 운행 하지 않았다고 함

3일 후 3.5km 떨어진 곳에서 말과 함께 시체로 발견


1976년 매사추세스의 유명 심리학자 한명이 터널을 방문 중간 쯤에서

남북전쟁시대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를 목격


1984년 대학교수이자 유령 사냥꾼 알리 올 메이커가 제자들과 터널을 탐험, 터널 안에서

자신을 끌어 당기는 듯한 굉장한 불쾌감을 느꼈고, 가지고 간 카셋트에 정체 불명의 목소리가 녹음


이곳은 일반인 걸어서 접근 하기가 상당히 힘든 곳 입니다.

큰 맘먹고 산 몇개 넘어서 가야 있는 곳~

현재 터널은 일반 승객을 태우는 기차는 다니지 않고

화물 관련 기차들만 운행 중 입니다.

그 외에서 수많은 유령목격담,심령체험 등의 사연이 많습니다.

심령 스팟이다 보니 고스트 헌터들이 많이 방문, 경찰당국에서는 기차가 다니는

위험한 지역이니 출입을 하지 말라며 금지 시키지만 경찰의 눈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간다고...


아래는 후삭 터널 동영상

상당히 으스스 합니다...